제2차 세계대전

Article in other languages:

제2차 세계 대전
WW2Montage.PNG
날짜 1939년 9월 1일 ~ 1945년 8월 15일
장소 유럽, 지중해, 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 동남 아시아, 태평양
결과 1. 연합군 승리
2. 국제 연합의 국기 국제 연합 창설
3. 미국의 국기 미국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소비에트 연방이 초강대국으로 성장
4.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사이 냉전으로 치달음
5.영국,프랑스 등이 국력을 소진하자 아시아,아프리카에 민족주의 열풍이 불어 식민지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 대거 탄생.
이유 세계 대공황, 베르사유 조약
교전국
연합국
US flag 48 stars.svg 미국
영국의 국기 영국
폴란드의 국기 폴란드
프랑스의 국기 자유 프랑스[1]
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소비에트 연방
중화민국의 국기 중화민국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기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국기 뉴질랜드
캐나다의 국기 캐나다
네덜란드의 국기 네덜란드
추축국
나치 독일의 국기 나치 독일
일본 제국의 국기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의 국기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의 국기 비시 프랑스[2]
핀란드의 국기 핀란드
헝가리의 국기 헝가리 왕국
루마니아의 국기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국기 불가리아
타이의 국기 타이
지휘관
US flag 48 stars.svg 프랭클린 루스벨트
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의 국기 윈스턴 처칠
중화민국의 국기 장제스
프랑스의 국기 샤를 드골
나치 독일의 국기 아돌프 히틀러
일본 제국의 국기 히로히토
일본 제국의 국기 도조 히데키
이탈리아의 국기 베니토 무솔리니
프랑스의 국기 필리프 페탱
헝가리의 국기 호르티 미클로시
루마니아의 국기 이온 안토네스쿠
타이의 국기 피푼 송크람
피해 상황
군인 사망
14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망
3600만 명 이상
총 5000만 명 이상 사망
군인 사망
8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망
400만 명 이상
총 1200만 명 이상 사망

제2차 세계 대전 (第二次世界大戰, World War II)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8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하였다고 본다. 한편에선 1937년 7월 7일 일본중화민국 침략, 1939년 3월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미국원자 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이 결과로 한국, 타이완 등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지역들이 독립하거나 모국으로 복귀하였다.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약 4천만 명에 달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대학살을 감행, 겁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수십만 난징 시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1944년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통해 일본인을 비롯한 조선인, 중국인, 동남 아시아인 등 여러 나라의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하였으며, 독일은 ‘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집시를 학살하였다. 또한 미국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대규모로 폭격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재일 조선인 포함), 같은 해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 명을 살상하였으며, 영국과 미국의 공군은 드레스덴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의 피해는 극히 심하였다.

전쟁은 크게 서부 유럽 전선, 동부 유럽 전선중일 전쟁·태평양 전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럽 전선만을 얘기할 경우 히틀러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목차

배경 및 원인

영국, 프랑스 등 열강 세력은 방대한 식민지를 확보하고, 이들 식민지와의 무역을 독점하는 블록화된 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반면, 오랜 기간 동안 분열 되어 있다가 새로이 통일된 근대 민족국가로 태어난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19세기에야 문호를 개방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일본 등 자본주의 후발 국가들은 식민지가 충분치 않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의 무역에 의존한 경제를 가지고 있었는데,1929년 ~ 1933년세계경제대공황 이후 각국이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도입하고 보호무역주의를 취함에 따라 이들 자본주의 후발 국가들은 큰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

한편 1차 세계대전으로 알자스·로렌 지방 등 영토를 상실하고, 막대한 전쟁보상금과 이를 갚기 위한 무리한 통화팽창 정책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 그리고 1차대전 승전국이었지만 영,프에 밀려 아무런 이권을 얻지 못한 이탈리아 등에서는 이른바 파시즘이라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이에 러시아 혁명 이후 위협적으로 성장하는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경계심이 더해져 영국과 프랑스 등 기존 열강에 대한 반발심, 배타적인 민족주의, 반공주의를 공통점으로 하는 독일의 나치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당이 집권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대공황이 벌어졌고 독일,이탈리아,일본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는데 기존 열강들의 블록화된 경제체제 하에서 마땅히 이를 타개할 방법이 없던 이들 국가들은 전쟁을 통한 식민지 확보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 하게 되고 이는 기존 열강들과의 갈등관계를 심화 시켰다.

베르사유조약 파기를 주장하며 1933년 독일에서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같은 해 10월, 제네바 군축회의 결과의 불만으로 국제연맹을 탈퇴하였으며, 1935년 3월에는 재군비를 선언, 1936년 3월 라인란트 비무장지대에 진주하여 로카르노 조약을 파기함과 아울러 베르사유 조약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독일이 재무장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1937년 11월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의 합병을 결의한 히틀러는 1938년 2월 일련의 인사이동으로 나치스 체제를 강화하고, 같은 해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다.

이어 체코슬로바키아수데텐 지방을 요구하여 전쟁의 위기를 조성하자, 영국 총리 체임벌린1938년 9월, 뮌헨 회담에서 체코슬로바키아로 하여금 수데텐 지방을 할양케 하였다. 이리하여 독일은 동부·중부 유럽 진출을 위한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국제연맹과 집단안전보장체제가 붕괴되면서 더 이상 독일을 견제할 수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스페인내전에서 승리한 뒤 집권하여 친독,친이탈리아 전체주의 정권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를 공격하여 합병하는 등, 파시즘 세력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조선과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이 만주를 침공하여 점령한 뒤,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세웠다. 이에 국제 연맹중화민국 측의 요구를 받아 들여 일본에 대하여 제재 조치를 취하려 했으나 일본은 국제 연맹을 탈퇴하게 된다. 국제 연맹을 탈퇴하면서 영국, 프랑스 등 기존 열강과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자 일본은 중일 전쟁을 일으켰으며 독일, 이탈리아와 방공 협정을 맺음으로써 추축국에 가입하게 된다. 중일 전쟁은 영국과 미국이 본격적으로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만주와 몽골 일대에서 소련과 일본이 국지전을 벌이는 노몬한 사건이 일어난다.

한편 히틀러는 소련과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음으로써 동,서 양쪽에서 독일을 압박하려는 영국과 프랑스의 의표를 찌른다. 그리고 곧바로 소련과 연합하여 폴란드를 공격하게 된다. 이에 폴란드와 동맹을 맺고 있던 영,프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돌입한다. 폴란드는 강력하게 저항하였으나 동서 양쪽에서 독일과 소련이 밀고 들어오자 맥없이 무너졌다. 폴란드를 쉽게 함락한 히틀러는 곧 덴마크,노르웨이등을 차례로 공격하여 쉽게 빼앗고 영국,프랑스와 대치하게 된다.

경과

전쟁의 경과
     서방 연합국      소련 측 연합국      추축국, 추축국의 식민지와 비시 프랑스      중립국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

유럽 전선에서 초기에 독일은 전선의 취약한 곳을 기갑부대로 붕괴시킨 후 적의 주력부대를 포위,섬멸하는 전격전의 개념을 도입하여 큰 효과를 본다.독일은 백색 작전, 황색 작전, 낫질 작전, 베저 작전을 성공시켜,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를 점령하였다. 독일군은 영국과 프랑스의 허를 찌르며 기갑부대를 아르덴느삼림을 통과시켜 영,프연합군을 포위한다. 포위된 영,프연합군은 덩케르크해안에서 영국으로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하여 많은 병력이 빠져나갔으나 대부분의 장비를 잃는다. 이 때 빠져나간 프랑스군은 드골자유프랑스군의 일원이 되어 이후 독일과 싸우게 된다. 덩케르크에서 주력부대를 모조리 잃은 프랑스는 독일에게 쉽게 항복해 버리고 독일은 프랑스 북부는 직접 점령하고 남부에는 비시프랑스라는 괴뢰정부를 세운다. 독일 공군사령관 괴링은 공군을 이용하여 영국을 항복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으나 영국본토항공전에서 영국 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패배한다. 이후 영국에 육군을 상륙시키려 했던 바다사자 작전은 취소된다.

한편, 영국의 수상함대와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던 독일 해군은 U보트라 불리우는 잠수함을 투입하여 연합군 상선을 무차별 공격하였다. 피해가 극심하자 호송선단을 만들고 구축함을 대거 투입하는 등 대응책을 내놓아 피해가 줄어들긴 했으나 전쟁 내내 U보트는 대서양과 지중해, 북해 등지에서 맹활약하였다.

바다사자작전이 취소된 이후 나치 독일은 동쪽으로 관심을 돌려 1941년 이탈리아가 점령하지 못한 그리스와 독일과의 동맹에 반대하는 정변이 발생한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를 모두 점령하고,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동맹국으로 삼았다. 그리고 1941년 6월 22일, 약 300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한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하여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기습공격은 크게 성공하여 소련군은 개전 초기에 엄청난 병력을 손실하고 빠르게 패퇴하였다. 독일은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했으나, 보급 부족과 겨울의 시작으로 인해 모스크바공방전에서 패한다. 1942년에는 코카서스카스피 해 연안의 석유 자원 및 드네프르공업지대의 확보를 위해 이른바 청색 작전을 입안하여 남부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1942년 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파울루스가 이끄는 6군이 소련군의 천왕성 작전에 의해 포위되어 전멸하였고, 코카서스로 진격했던 군대들도 후퇴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독일은 하리코프공방전을 통해 소련에 반격을 가해 큰 타격을 주었으나 영국과 미국의 막대한 전쟁물자 지원과 함께 우랄산맥 동쪽으로 이전한 소련의 공업시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소련의 전력은 급속히 강화되어 서로의 세력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독일은 티이거,판터등 신형전차를 전선에 보충하고 치타델 작전을 입안하여 소련의 쿠르스크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으나 이미 독일의 정보망을 꿰뚫고 있던 소련은 독일의 공세에 충분히 대비해 놓고 있었다.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은 90만명 이상에 달하는 병력과 3천여대의 전차,2천기 이상의 항공기를 동원하며 승리를 장담하였으나 소련측의 병력은 독일의 예상치보다 훨씬 신속하게 불어나서 그보다 강했다. 쿠르스크전투에서 독,소 양측은 서로 막대한 전력을 소진하였는데 소련은 이를 쉽게 복구하였으나 독일은 그렇지 못하였고 그 뒤로 소련에게 패퇴하기 시작한다. 소련은 명왕성작전을 통해 독일의 중부집단군을 괴멸시키고 독일은 동부전선이 급속히 무너지며 빠르게 서쪽으로 쫓겨나기 시작한다.

영국과 미국은 개전초부터 항속거리가 긴 4발 중폭격기를 사용하여 독일의 주요공업지대와 주요 도시들을 전략폭격한다. 특히 소련침공 후 루프트바페가 소련과 독일본토로 분산되자 공습은 더욱 용이해진다. 영국은 폭장량이 많은 랭카스터 같은 폭격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야간공습을, 미국은 정교한 폭격조준장치와 여러 정의 엄호기관총을 가진 B-17,B-24등의 폭격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간공습을 주로 담당하였다. 특히 P-51 머스탱의 등장 이후에는 독일 본토까지 엄호전투기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독일은 V-1,V-2등 로켓무기를 개발하여 영국으로 끊임없이 발사하였으나 무유도 병기여서 그다지 효율은 높지 않았다.

이탈리아군을 돕기 위해 참전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부족한 병력과 병참 지원에도 불구하고 에르빈 롬멜 장군과 북 아프리카 군단(DAK)이 선전하였으나,몰타섬에 위치한 영국 공군과 지중해함대의 활약으로 보급선이 끊겨 나날이 강화되는 영국군에게 전력상 열세에 놓인다. 이에 영국군의 몽고메리장군은 엘알라메인작전을 통해 독일군을 밀어내고, 독일군은 1943년 초 튀니지에서 항복하면서 완전히 축출된다. 이후 연합군은 시실리 및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본토로 연합군이 상륙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실각시키고 연합군에 항복한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독일은 플란데 작전을 발동, 이탈리아군을 무장 해제하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복귀시킨 후, 사실상 점령군 행세를 하며 연합군을 맞아 싸웠다. 이 이탈리아 전선은 유례없는 산악전으로 진행되면서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무솔리니는 살로공화국이라는 독일의 괴뢰정부의 수장을 맡았으나 살로공화국은 사실상 아무 힘도 없었다.

한편 독일은 영국과 미국의 상륙작전에 대비하여 대서양 해안을 따라 1942년부터 소위 대서양 방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수많은 외국 포로가 동원되었으며 프랑스로부터 네덜란드까지 연결되었다. 미군과 영국군은 1942년의 디에프 기습 공격에서 얻은 전훈을 참고하여 1944년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으로 연합군은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독일 내에서는 동부전선의 급속한 붕괴에 따른 소련군의 빠른 진격과 서부전선에서의 불리한 전황 등에 따라 전쟁이 패했음을 깨닫고 히틀러를 암살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워 연합군과 강화하려는 세력이 나타났다. 이들은 매우 치밀하게 조직되어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히틀러의 회의실에서 폭탄을 터뜨렸으나 히틀러는 살아 남았고, 쿠데타 세력은 곧 진압되었다. 이 와중에 쿠데타 세력과 연루 혐의를 받은 롬멜,클뤼게등 유능한 지휘관들이 숙청 되었다.

독일군은 서부에서 흔히 벌지 대전투로 불리는 라인 강 수비 작전으로 전세의 재역전을 노렸으나, 작전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동쪽에서 소련군은 계속 진군하여 핀란드,루마니아,헝가리 등 추축동맹국들이 소련에 항복한다. 결국 5월 1일, 소련군은 총공세를 취해 베를린을 점령하고, 히틀러는 해군제독 되니츠에게 총통자리를 넘긴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뒤 측근들에 의해 불에 태워진다. 영미연합군과 소련군은 엘베 강토르가우서로 만나게 된다. 독일은 1945년 5월 7일 서부 연합군에 항복하고, 5월 8일에는 동부의 소련군에게 항복하였다. 한편 무솔리니는 가망이 없는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탈출을 감행하지만 빨치산들에게 붙잡혀 처형당하게 된다.

독일군은 2차대전 내내 나치스의 인종주의 이론에 따라 수백만의 유태인, 집시족 등을 아우슈비츠등 여러 수용소에 수용하여 대량 학살하거나 강제노동을 시켰다. 또 소련 등 점령지에서도 대거 인종청소를 감행하였다. 이에 나중에 독일본토로 진격해 들어온 소련군도 독일 민간인들에게 잔혹하게 보복하는 등 민간인 학살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아시아와 태평양 전선

태평양 전선은 애초에 일본이 국민당과의 중일 전쟁이 진행 중에 있었고 전쟁 기간 중에 비시 프랑스령의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는 등 교전이 있었다. 중국에서의 일본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고 중화민국과 장개석 정권을 지지해 왔던 미국은 일본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자 이른바 ABCD 포위망을 구축하고 나아가 일본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와 철광의 수출 제한을 발동하면서 일본을 고립시켰다. 그러자 자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경제 위기의 초래를 우려하였고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영국령 말레이 반도, 버마,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자원 산지들과 나아가 인도, 태평양의 섬들을 장악해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일본을 중심으로 돌리려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제창하였다.

강경파가 득세하는 가운데 미국의 경제 제재가 심화되자 결국 일본은 1941년 12월 8일, 항공모함을 동원하여 미국 태평양함대의 본거지인 하와이 주진주만을 기습 폭격하면서 영국,미국에 선전포고를 한다.태평양함대에 심각한 손실을 입힌 일본군은 공백기간을 이용하여 빠르게 기습을 가하여필리핀에 상륙하여 맥아더휘하의 미군을 압박하고 맥아더는 호주로 탈출하며 필리핀을 빼앗긴다. 이어 일본군은 홍콩, 싱가포르 미얀마(버마)의 식민지 주둔 영국군을 공격하였다. 이에 영국은 최신형 전함프린스오브웨일즈와 순양전함리펄즈, 구축함들로 구성된 Z함대를 파견하였으나 일본군에 의해 궤멸 당하고 홍콩,싱가포르,미얀마 등을 일본에 빼앗긴다. 일본군은 이어 서부 뉴기니 섬, 네덜란드령 동인도 등 동남아 대부분과 솔로몬 제도까지의 모든 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하였다. 이렇게 초기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령 남 뉴기니의 주요 항구인 포트모르즈비를 점령해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를 노리려 하였으나 육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육군의 영웅적 활약으로 패전하였고 해전에서도 미국 항공모함 기동대와 벌인 산호해 해전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실패하였다.

이후 일본은 미국 항공모함 부대에 의해 둘리틀 공습(1942년 4월 18일)으로 주요 도시가 최초로 미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고,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일본은 미국 항공모함 부대의 격멸과 태평양에서의 재해권 완전 장악을 위해 미드웨이 섬에 대한 공세에 나섰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항공모함과 함재기, 숙련된 조종사 등을 대거 잃는다.

그리고 미국의 거대한 산업이 전시체제로 가동되자 무수히 많은 탱크,전투기,군함,전쟁물자를 쏟아 냈고, 곧 일본군은 질적, 숫적 열세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과달카날전투,마리아나해전 등등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어진 육전 및 해전에서 참패하였고 전략적으로 크게 중요한 필리핀마저 상실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레이테 해전에서 보유 해군의 대다수를 상실하였다. 또 중국으로 들어가는 영미연합군의 물자지원 루트를 끊기 위하여 미얀마 서부를 거쳐 인도로 진격하려 임팔작전 개시하였으나 밀림에서 보급부족과 항공전력의 열세로 참패하였다. 결국 일본은 한반도의 제주도와 일본 열도의 규슈, 오키나와 섬을 최후의 방어전장으로 설정하고 항전하려 하였다. 미군은 괌,사이판에 기지를 두고 B-29폭격기를 이용하여 일본에 지속적으로 융단폭격을 가했고 필리핀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발진하는 항공기와 잠수함 등으로 동남아에서 일본본토로 가는 자원보급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1945년 3월 10일에는 도쿄 대공습으로 15만이 넘는 일본인 및 재일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다.

1945년 6월 23일 수개월간 참혹한 전투 끝에 일본이 끝까지 사수하려 했던 오키나와가 미군에 함락되었으며,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받고 1945년 8월 8일 그동안 일소불가침조약에 따라 중립을 지키던 소련이 조약을 깨고 만주로 진격하자 1945년 8월 15일에 항복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장제스중화민국과 함께 대일전쟁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병력이 많지 않아 장제스는 처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무시 했으나 김구 선생의 지시를 받은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를 점령하고 훙커우공원에서 승전기념식을 거행하던 일본군 고위 장성들을 대거 살상한 의거 이후 큰 감명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 도와 주었다. 특히 김구 선생의 부탁을 받고 영,미 연합군을 설득하여 한국은 얄타회담에서 전후 독립을 보장 받게 된 유일한 국가가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은 숫자는 많지 않았으나 버마, 중국 내륙 등에서 포로심문, 게릴라공격, 첩보활동 등에서 맹활약 하였다.

종전

소련은 1945년 8월 8일,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소련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지는 않았으나, 8월 폭풍 작전으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만주한반도 북부에서 일본 세력을 축출하였다. 또한 과거 러일 전쟁의 패배로 러시아 제국이 일본 제국에 할양하였던 사할린 섬 남부와 쿠릴 열도를 탈환하였다.

1945년 9월 2일, 제2차 세계 대전은 일본의 전권대사였던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와 미국 측의 맥아더 원수가 요코하마 근해에 정박한 미 해군 미주리 호의 선상에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완전히 끝이 났다.

연표

1939년

  • 9월 1일 - 독일,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 9월 3일 -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 선전 포고.
  • 9월 18일 - 소련군, 폴란드 동쪽국경에 침공.
  • 9월 27일 - 독일, 바르샤바를 점령. 그리고 항전에 참여한 폴란드인을 체포.
  • 9월 28일 - 독일-소련 경계 설정, 우호 조약으로 폴란드 분할. 소련, 핀란드에 영토 통과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 11월 30일 - 소련, 핀란드에 침입(겨울 전쟁). 독일군이 핀란드를 지원함. (스웨덴은 무기를 대여했음. 그러나 다시 중립으로 회귀)

1940년

  • 3월 12일 - 겨울 전쟁 종료. 핀란드는 소련에 영토의 10%를 할양.
  • 4월 9일 - 독일, 덴마크를 점령, 노르웨이 침략(베저 작전).
  • 5월 10일 - 영국, 윈스턴 처칠 거국 내각 수립.
  • 5월 11일 - 독일, 프랑스 전역 공격 개시. 베네룩스 공격 개시. 룩셈부르크 항복.
  • 5월 15일 - 네덜란드, 독일에 항복.
  • 5월 28일 - 벨기에, 독일에 항복.
  • 6월 4일 - 영국-프랑스군, 됭케르크 철수 작전 성공.
  • 6월 10일 -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이탈리아, 프랑스에 선전 포고.
  • 6월 14일 - 독일군, 파리 입성.
  • 6월 22일 - 프랑스, 독일에 항복.
  • 7월 11일 - 프랑스에 비시 정권이 수립.
  • 7월 19일 - 미국 해군 대확장법 제정.
  • 8월 1일 - 아돌프 히틀러, 영국 침략 준비 명령(바다사자 작전). 영국 항공전 개시.
  • 8월 6일 - 소련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불법 점령. 이는 발트 3국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
  • 9월 27일 -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추축국에 조인, 삼국 군사 동맹 결성.
  • 11월 20일 - 헝가리, 삼국 군사 동맹에 가입.
  • 12월 18일 - 아돌프 히틀러, 바르바로사 작전 준비 명령.

1941년

  • 1월 6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4개의 자유” 연설.
  • 3월 11일 - 미국, 랜드리스 제정.
  • 4월 6일 - 독일, 유고슬라비아 침공.
  • 4월 17일 - 유고슬라비아, 독일에 항복.
  • 4월 17일 - 독일, 이탈리아가 실패했던 그리스에 침공.
  • 4월 23일 - 그리스, 독일에 항복. 독일이 크레타 섬을 탈취함.
  • 5월 5일 - 에티오피아, 이탈리아의 불법 점령(1936~1941)으로부터 해방.
  • 5월 6일 - 스탈린,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취임.
  • 5월 10일 - 독일 부총통 루돌프 헤스, 영국과 화평을 추진하기 위해 영국으로 비행기를 직접 몰고 날아가지만, 영국으로부터 전쟁 포로 취급을 당하고 체포됨.
  • 6월 22일 - 독일, 사상 최대의 원정군으로 소련을 기습 공격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모스크바 공략은 추위와 보급 문제로 실패.
  • 8월 12일 - 미국과 영국 정상 회담, 대서양 헌장 발표.
  • 9월 24일 - 소련 등 15개국, 지지 표명.
  • 12월 7일 - 소련, 독일에 반격. 일본, 진주만 공습.
  • 12월 9일 - 중화민국, 독일과 이탈리아에 선전 포고.
  • 12월 9일 - 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 12월 11일 -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에 전쟁 선포.
  • 12월 25일 - 일본, 영국령 홍콩 점령.

1942년

  • 1월 1일 - 연합국 26개국, 워싱턴에서 공동 선언 (연합국 선언) 조인.
  • 1월 20일 - 독일,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을 학살하기로 결정.
  • 2월 15일 - 일본, 싱가포르를 점령하여 ‘쇼난’(昭南)으로 개명하다.
  • 4월 18일 - 미 육군 항공대, 일본 본토를 기습·폭격하는 이른바 둘리틀 공습을 감행.
  • 6월 5일 - 일본,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게 대패. 이 해전 이후, 미국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잡음.
  • 6월 30일 - 에르빈 롬멜이 지휘하는 독일-이탈리아군이 엘 알라메인에 도착.
  • 8월 16일 - 미·영·소 지도자, 모스크바 회담. 소련, 제2전선 요구.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횃불 작전) 결정.
  • 9월 13일 - 독일 6군, 스탈린그라드 시내 돌입.
  • 11월 8일 -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 11월 11일 - 독일, 비시 정권하의 비점령 프랑스 지역을 점령 지역으로 편입시켜 튀론 항을 제외한 프랑스 전 영토를 점령.

1943년

  • 1월 25일 - 미국과 영국,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무조건 항복 원칙’ 발표.
  • 1월 31일 -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 승리.
  • 5월 13일 - 북아프리카의 독일-이탈리아군 항복.
  • 6월 10일 - 코민테른 해산.
  • 7월 3일 -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쿠르스크 전투 개시.
  • 7월 10일 - 미국과 영국 연합군, 시칠리아 섬 상륙.
  • 7월 25일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베니토 무솔리니를 체포하고, 바돌리오 장군을 내각으로 삼음.
  • 7월 23일 - 쿠르스크에서 소련군 승리. 독일군 동부 전선 주도권 상실.
  • 8월 24일 - 미·영 지도자, 퀘벡 회담. 제2전선 결정.
  • 9월 3일 - 이탈리아, 연합국에 항복.
  • 9월 8일 - 독일, 로마 점령.
  • 9월 15일 - 무솔리니 구출, 파시스트 공화 정부(살로 공화국) 수립.
  • 10월 13일 - 국왕과 바돌리오 내각, 남쪽으로 도피. 독일에 선전 포고.
  • 10월 19일 -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국 외상 회의.
  • 11월 26일 - 미국·영국·중국 카이로 회담. 한국 독립 결의.
  • 11월 28일 - 미국·영국·소련, 테헤란 회담. 소련의 대일 참전 토의.
  • 12월 1일 - 카이로 선언 발표.

1944년

노르망디로의 상륙.
  • 1월 20일 - 소련, 레닌그라드 해방.
  • 5월 13일 - 독일군, 크림 반도에서 후퇴.
  • 6월 4일 - 이탈리아 전선의 미국 및 영국군, 로마 해방.
  • 6월 6일 - 역사상 최대의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돌입.
  • 6월 22일 - 소련군 바그라티온 작전 개시.
  • 7월 20일 - 독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발생.
  • 7월 22일 - 연합국 45개국, 브레턴우즈 협정을 맺고, IMFIBRD 설치.
  • 8월 1일 -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발발.
  • 8월 19일 - 바그라티온 작전 성공, 독일 중부 집단군 괴멸.
  • 8월 24일 - 루마니아, 연합군에 항복하고 동맹국의 지위를 포기.
  • 8월 25일 - 연합군, 파리 해방. 루마니아, 독일에 선전 포고.
  • 8월 26일 - 불가리아, 동맹국에 빠져나와 중립 선언. 훗날, 소련이 선전 포고를 하자 곧바로 항복.
  • 9월 2일 - 핀란드, 독일과 국교 단절.
  • 9월 9일 - 샤를 드골, 임시정부 수립. 불가리아, 조국 전선 정부 수립.
  • 9월 10일 - 불가리아, 연합국으로 전환. 독일에 선전 포고.
  • 9월 19일 - 핀란드, 영국 및 소련과 휴전 협정 조인.
  • 10월 9일 - 영국과 소련의 지도자, 모스크바 회담. 발칸 분할에 대해 의견 일치.
  • 10월 11일 - 헝가리의 국가원수인 미클로시 호르티가 나치 독일에 의해 감금당함.
  • 12월 10일 - 소련군과 티토의 군대가 베오그라드를 해방.
  • 12월 31일 - 헝가리, 독일에 선전 포고.

1945년

1945년 8월 9일 핵무기 투하 전·후의 나가사키 시
일본의 항복

사용된 무기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아 무기 개발 금지와 국방군 제한 등을 당하였으므로 다수의 무기 개발이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에 소련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졌는데, 히틀러의 집권 이후 공공연하게 베르사유 체제의 철폐가 주장되고 히틀러의 반공 정책으로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협력 관계가 청산되었다.

독일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대전차 무기

일본제국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이탈리아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붉은 군대 (소련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영연방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미군

전차

전투,공격,폭격기

대전차 무기

2차 대전 관련 주요 학살 사건

  • 난징 대학살 :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6주간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 사건의 실체 및 학살된 피해자 수에 대해서 오늘날 논란이 많다.
  • 유대인 대학살 : 600만 명이 현재 일반적인 설이나, 다른 의견도 있다.
  • 카틴 숲의 학살 : 소련군이 폴란드군 장교단을 카틴 숲에서 학살한 사건. 현재 이 사건은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갈등을 빚고 있다.
  • 말메디 포로 학살 사건 : 전쟁 말기 벨기에 아르덴느 숲의 바스통에서 무장 친위대가 미군 포로 수십 명을 학살했다는 사건. 그러나 전후 조사 과정에서 과장됐음이 드러났다.
  • 독일군 포로 학살 : 종전 후, 연합군은 포로로 잡힌 독일군을 강제로 국가 재건 등과 같은 중노동에 투입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프랑스, 소련의 경우), 일부러 의약품과 음식의 제공을 줄여 굶겨 죽이는 만행(蠻行)을 저질렀다(미국의 경우).

주석

  1. 샤를 드골영국으로 망명하여 세운 임시정부이다. 비시 프랑스와 구분하기 위해 자유 프랑스로 표기하였다.
  2. 비시 프랑스는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로 나치에 협조한 것 때문에 추축국으로 분류한다.

참고 자료

  • 박태균, 《한국 전쟁》 (책과 함께, 2005년) 64~65쪽.

참고 전쟁

Questions for article: 2Ǻȭ

This article is from Wikipedia. All text is available under the terms of the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IHS Europe: Infrared Heating Systems for Home and Business.